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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영 친일파 후손 논란 총정리…증조부 안상호는 누구? ‘사실무근’ 해명 번복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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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영 친일파 후손 논란 총정리…증조부 안상호는 누구? ‘사실무근’ 해명 번복까지

넷플릭스 드라마 ‘중증외상센터’를 통해 대중에게 얼굴을 알린 배우 하영(본명 안하영)이 뜻밖의 ‘친일파 후손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논란의 중심에는 하영의 증조부인 의사 안상호(1872~1927)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온라인 의혹 정도로 시작됐지만 안상호가 일제강점기 대정친목회 평의원으로 활동했던 기록이 확인되면서 논란이 커졌습니다.

더욱이 하영 측이 처음에는 친일 의혹을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했다가 하루 만에 입장을 정정하면서 논란은 더욱 확산되는 모습입니다.

하영 친일파 후손 논란, 어떻게 시작됐나?

논란의 시작은 하영이 자신의 집안 이야기를 방송에서 공개하면서부터입니다.

하영은 지난 8월 7일 KBS2 ‘옥탑방의 문제아들’에 출연해 자신의 집안이 증조부부터 이어진 4대째 의사 집안이라고 소개했습니다.

하영은 증조부에 대해 일본에서 서양의학을 배운 뒤 한국에서 개원한 초기 의사 중 한 명이라는 취지로 설명했습니다.

방송에서는 증조부의 이름이 직접 언급되지 않았지만 이후 온라인에서 해당 인물이 의사 안상호라는 주장이 제기됐고, 소속사 역시 하영의 증조부가 안상호라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하영 증조부 안상호는 누구?

안상호는 1872년 태어나 1927년 사망한 의사입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이 운영하는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시스템 등에 따르면 안상호는 1902년 일본 동경자혜의학전문학교를 졸업했으며, 한국인으로는 처음 일본 의사 자격증을 취득한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고종의 건강을 돌보는 전의 촉탁으로 활동했고, 조선왕조실록에는 순종의 촉탁의로 활동한 기록도 있습니다.

문제는 그의 일제강점기 행적입니다.

친일 논란의 핵심 ‘대정친목회’

하영 측이 추가 확인을 통해 인정한 부분은 안상호가 1916년 대정친목회 평의원 명단에 포함돼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대정친목회는 일제강점기인 1916년 만들어진 단체로 경제인과 관료, 언론인, 교육자, 법조인, 의료인 등이 참여했습니다.

역사문제연구소 장신 상임연구위원의 논문에 따르면 안상호는 1916년 11월 구성된 간부진 가운데 21명의 평의원 중 한 명으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조선총독부 경무국은 대정친목회를 총독정치를 인정하고 일본인과 조선인의 융화를 목적으로 하는 이른바 ‘내선융화단체’로 규정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1918년 매일신보 인터뷰도 재조명

논란이 커지면서 안상호의 과거 언론 인터뷰도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1918년 조선총독부 기관지였던 매일신보에는 안상호의 가정이 일본식 생활에 동화된 사례로 소개됐습니다.

당시 보도 내용을 보면 안상호는 일본인 아내와 가정을 꾸렸으며 집안에서 일본어를 사용하고 일본식 생활방식을 따르고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 때문에 온라인에서는 대정친목회 활동과 해당 인터뷰를 근거로 안상호의 친일 행적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졌습니다.

그런데 ‘친일인명사전’에는 없다?

여기에서 반드시 구분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안상호가 대정친목회 평의원으로 활동한 기록이 확인됐다고 해서 현재 공개된 자료만으로 그를 공식적으로 ‘친일파로 확정된 인물’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안상호는 민족문제연구소가 2009년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는 등재돼 있지 않습니다.

역사학자 심용환 역시 대정친목회 활동만으로 곧바로 안상호를 친일파로 단정하는 데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의 의견을 밝혔습니다.

따라서 현재 상황을 정확하게 표현한다면 ‘친일 행적 의혹이 제기된 안상호의 후손’ 정도가 적절합니다.

하영 측 처음에는 “사실무근”

논란이 커진 결정적인 이유 중 하나는 하영 측의 초기 대응이었습니다.

하영의 소속사 비스터스엔터테인먼트는 처음에는 하영의 증조부가 안상호인 것은 맞지만 친일 행적과 관련된 의혹에 대해서는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을 내놓았습니다.

하지만 이후 관련 자료들이 잇따라 알려지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결국 소속사는 하루 만에 기존 입장을 정정했습니다.

하루 만에 입장 번복…“대정친목회 기록 확인”

소속사는 8월 11일 추가 확인 결과 안상호가 1916년 대정친목회 평의원 명단에 이름을 올린 기록이 실제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충분한 검증 없이 ‘사실무근’이라고 성급하게 답변해 혼란을 일으킨 데 대해 사과했습니다.

하영 역시 이번 논란으로 심려를 끼친 점을 깊이 새기고 앞으로 더욱 신중하고 겸허한 자세로 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광고계까지 영향…관련 영상 비공개

논란은 하영의 광고 활동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머니투데이에 따르면 하영을 홍보 모델로 활용했던 일부 기업들이 관련 광고 콘텐츠를 비공개로 전환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삼성전자 역시 하영이 등장했던 광고 영상을 비공개로 전환한 것으로 보도됐습니다.

배우 개인의 잘못이 아닌 증조부의 과거 행적을 이유로 현재의 광고 활동까지 영향을 받는 것이 적절한지를 놓고도 의견이 엇갈릴 수 있는 부분입니다.

13년 전 익명 커뮤니티 글까지 등장

논란이 계속되면서 2013년에 작성된 한 익명 커뮤니티 글까지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해당 글의 작성자는 자신의 증조부가 고종의 독살 의혹과 관련해 거론된 어의였다는 취지의 내용을 적으며 집안의 과거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했습니다.

일부에서는 글의 내용이 하영의 가족사와 유사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다만 해당 글의 작성자가 하영이라는 사실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온라인상에서 제기되는 추측을 사실처럼 받아들이는 것은 주의해야 합니다.

‘고종 독살설’ 역시 구분해서 봐야

안상호와 관련해서는 ‘고종 독살설’까지 온라인에서 거론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현재 확인된 사실과 의혹을 명확하게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안상호가 고종의 건강을 돌본 의료진 가운데 한 명이었다는 기록과 고종 독살에 직접 관여했다는 주장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따라서 ‘고종을 독살한 의사’처럼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사실로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결국 논란의 핵심은 무엇일까?

이번 논란을 단순히 “하영이 친일파 후손이다”라는 한 문장으로 정리하기에는 여러 가지 쟁점이 있습니다.

현재까지 확인된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하영의 증조부가 의사 안상호라는 사실은 확인됐습니다.

  • 안상호가 1916년 대정친목회 평의원 명단에 포함된 기록도 확인됐습니다.

  • 일제강점기 일본식 생활과 동화를 강조한 안상호의 과거 인터뷰도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 그러나 안상호는 『친일인명사전』에는 등재돼 있지 않습니다.

  • 하영 측은 처음 친일 의혹을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했다가 관련 기록을 확인한 뒤 사과하고 입장을 정정했습니다.

  • 온라인에서 재조명된 2013년 익명 글의 작성자가 하영인지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 고종 독살과 안상호의 직접적인 연관성 역시 확인된 사실로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조상의 잘못을 후손에게 물을 수 있을까?

이번 논란에서 또 하나 생각해 볼 부분은 조상의 행적을 후손에게 어디까지 책임지게 할 수 있느냐는 문제입니다.

하영이 태어나기 훨씬 전인 일제강점기에 증조부가 어떤 활동을 했는지는 하영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따라서 증조부의 행적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철저하게 검증하되, 이를 근거로 후손인 하영 개인에게 동일한 책임을 묻는 것은 별개의 문제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반면 대중에게 가족사를 소개하는 과정에서 역사적으로 민감한 인물을 긍정적인 집안 내력으로 소개했다면 충분한 사실 확인이 필요했다는 지적도 나올 수 있습니다.

특히 논란이 제기된 뒤 곧바로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했다가 실제 기록이 확인되면서 입장을 번복한 부분은 이번 사태가 커진 중요한 원인으로 볼 수 있습니다.

마무리

배우 하영의 ‘친일파 후손 논란’은 단순한 연예계 가십을 넘어 우리 사회가 친일의 역사와 후손의 책임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라는 문제까지 던지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확인된 것은 증조부 안상호가 대정친목회 평의원으로 활동한 기록이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안상호가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돼 있지 않은 만큼 단순히 ‘공식 친일파’라고 단정하는 것도 신중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역사적 인물에 대한 평가는 기록과 자료를 바탕으로 이뤄져야 하며, 조상의 행적과 후손 개인의 책임 역시 구분해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다만 하영 측이 처음부터 관련 기록을 충분히 확인한 뒤 신중하게 대응했다면 지금처럼 논란이 확대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은 남습니다.

광복절을 앞두고 불거진 이번 논란이 앞으로 어떻게 정리될지 관심이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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